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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4 SAT


일기는 이미 다른 곳에 쓰고 있어서 이 블로그에는 개발 및 공부 관련 기록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종종 개발 및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는 백업 겸 여기에도 남겨두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읽힐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 일기의 독자는 나 자신이다. 지나간 기록 속 과거의 내 모습과 현재 사이를 비교하는 재미로 일기를 쓴다.


마치 김밥천국처럼 - 아니다, 김밥천국은 ‘김밥’이라는 한가지 내세울 핵심 포인트가 있으니 그리 좋은 비유는 아니겠다. 여하튼 여러 상호를 걸어두고 핵심 메뉴 없이 주문이 오면 어떻게든 받아내는, 문어발 식으로 여러 메뉴를 일단 ‘할 수는 있는’ 상태로 운영하는 밥집과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하지만, 뭐라도 하는 바람에 한가지에 집중하지 못해서 딱히 잘하는 것은 없는 상태. 그런 와중에서도 미련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2021년부터는 일단 전집중 이직의 호흡을 구사하여 열심히 공부중이다.


부트 캠프 시작 이전에는 더욱 중구난방으로 여러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강의만 6개월 가량 들었을 뿐, 실제로 코드는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환경 설정부터 에러가 난무하니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운좋게 부트캠프에 합격했고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 환경이 마련되었다.


주중에는 매일 강의를 듣고, 종종 과외를 나가고, 주말에는 번역과 과외에 매진한다. 다른 취미를 할 틈은 없지만 올해 3월부터는 전자음악 레슨도 일단 포기하지 않고 매주 나가고 있다. 매주 2-3분 가량의 트랙을 만들고 있었는데 7월부터는 거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다시 루틴을 회복해서 손을 더 빨리 놀려서라도 매주 트랙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려는 이유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도구이자, 문자 그대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배우는 재미가 있다. 배우는 재미만 자꾸 찾는 지식 호더가 되지 말고 무언가를 더 만들어야하는데.


오늘은 토스 코딩테스트에 시험삼아 지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언어를 선택해서 결국 한문제도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현업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프로그래머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 시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을 참고 나면 그 다음은 이전과 달라지게 되는구나.


내가 대학에 막 진학할 무렵에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었다. 기술을 배워봤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더라며, 결국은 기승전치킨집 사장이라고 자조하는 분위기는 내 기억에 그때가 더 심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말로 그 사이 세상이 변했다. 물론 10년 뒤에는 또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으니 지금을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만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는 미래에 대한 지침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 사용설명서나 예언서는 아니겠지.


세상이 다시 역변하든 말든, 프로그래밍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개인적인 동기는 충분하다. 이에 더해 사회적으로도 필요가 있는 동기를 찾아야 밥벌이를 하겠지. 우선 코딩 테스트를 통과할 알고리즘과 언어 지식부터 챙겨야 하겠고.


이렇게 공부해봤자 나이가 나이니만큼 어디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허무에 빠지지 않으려면 미래를 오히려 넘겨짚지 말아야 한다. 미래를 잊어야 한다. 이전에 같은 불안으로 이미 몇 년을 허공에 날려봤으니까,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전부터 막연히 사운드 아트나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건도 안됐고, 그럴 기회가 잠시 있었지만 그땐 그런 기회가 내게 온 줄 몰랐다. 내가 작업을 계속 할 수 없더라도 작업 환경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려면 뭘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봤다. 우연한 좋은 여러 계기가 겹쳐 2021년 2월에 방향을 찾았다. 음악가가 되지 못하도 음악과 사운드를 위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지, 얼마나 돈이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할 때가 많다.


이번주의 여러 시험은 제대로 치르지 못했지만 이번주의 할 일을 두어 시간 빨리 끝내서 시간이 남은 김에 일기를 썼다. 다음주도 힘을 내자.